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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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수요저녁예배 설교(롬 15:22-33 / 바울의 전도 계획과 기도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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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8-21 21:26 조회259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9dBeL2jUr74?si=i2wqoDP0NHcfyJvW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에 고린도에서 몇달 머물면서 기록했다. 바울이 앞으로 어느 지역에 가서 선교하기를 원하는지 본문이 기록되어 있다. 


22절

"너희에게" 로마 교회를 가리킨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하나님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고, 주를 위해서 믿음으로 충성하려고 하는데도 길이 막혔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신다. 바울이 로마로 속히 갈 수 없었던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이 많아서 그 지역에 먼저 복음을 전하기를 애쓰다가 늦어진 것이다. 


23절

"이제는" 22절과 연결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로마로 가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막혔다. 그런데 이제는 이 지 방에 일할 곳이 없다고 했다. 바울이 당시에 있었던 고린도 근처 지역을 가리킨다.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19)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가, 빌립보, 다메섹 등이 포함된 지역이다. 이 지역들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느라고 로마로 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지방이 일할 곳이 없다고 했다.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두루 다니면서 모든 지역에 복음을 잘 전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된다.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믿도록 전도했다는 것이 아니고 주요 도시를 다니면서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했다. 그러므로 나머지 지역 전도는 그 교회들이 하면 된다. 이제 바울은 눈을 돌려서 새로운 지역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원리를 배운다. 지금 있는 지역도 완전하게 100% 복음화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해전부터 서바나에 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를 경유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구원받은 다음에 선교하겠다고 하면 그런 날이 언제 오겠는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바울이 한 것처럼 큰 지역에 다니면서 어느 정도 편만하게 복음을 전했으니 이제는 새로운 지역에서 선교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선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도 같이 전도하는 동시에 외국에 나가서도 선교를 해야 한다.

"여러 해전부터.. 바라고 있었으니" 서바나 선교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고 여러 해전부터 바라고 계획했던 일이다.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이고, 당시에 땅 끝으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곳에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소망하며 길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곳처럼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곳까지라도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 바울이 이런 계획을 한 것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일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는다. 권능을 받으면 주님의 증인이 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바울은 땅 끝으로 생각되는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바울의 전도로 세계 문명이 바뀌고 역사가 새로 쓰여졌다.

로마에는 왜 가려고 했을까? 당시에 로마는 정치, 문화적 중심지였다. 세계의 수도와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서 로마 교인들을 믿음으로 든든히 세우고 말씀 위에서 부흥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로마에 가서 말씀 전하기를 원했고, 로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로마를 지나 서바나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 


24절

"지나는 길에 너희를 보고" 로마에 정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목적지가 서바나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로마를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볼 수 있다. 바울이 1-3차 전도여행을 마쳤다. 그랬으면 어느 정도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고, 세계 선교의 열매를 많이 맺었다. 바울이 나이도 많아졌다. 얼른 생각하면 쉬면서 편안하게 안식하면서 믿음생활을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로마 교회에 말씀을 전하고 서바나에 복음을 전해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개척정신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겠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열정과 복음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로마 교인들과 교제하고 은혜와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다. 성도들은 만나면 같이 예배드리고 교제하며 힘을 얻는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도의 교제는 아주 중요하다.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이 서바나로 갈 계획을 오래 전부터 했다. 가려고 마음을 먹고 그 계획을 로마에 편지를 써서 알리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냥 가면 되는 것 아닐까? 왜 보내달라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로마 교회가 바울을 서바나 지역 선교사로 파송해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파송은 그냥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후원 교회가 되어서 계속 기도해주고 선교비를 보내주면서 생활을 책임지고 끝까지 선교사역의 동역자가 되어서 협력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이 파송교회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선교사를 보내놓고 후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난감하고 곤란해지고 굶게 된다. 후원교회가 되면 반드시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끊임없이 기도해줘야 한다. 선교사 한 사람 파송하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여행하면서 여행비를 대달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선교하면서 당당하게 요청한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혼 살리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고, 교회가 해야될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요청하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선교하는 일에 쓰임받으면 개인이나 교회나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 생명 살리는 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까지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택한 백성을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교를 원하신다.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발을 복되다고 하신다. 그런 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선교에 협력하고 동참함으로 복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차원에서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한 것이다. 


25-27절

또 하나 새로운 내용을 말한다. 앞에서 계획을 말했다. 바울의 궁극적인 선교 목적은 서바나 선교이다. 그런데 로마를 경유하겠다고 했다. 로마가 세계 중심지이고 로마 교회가 든든히 서야 세계 선교가 잘 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내용을 하나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게 가노니" 바울이 있는 곳은 고린도 지역이다. 고린도에서 서쪽으로 가면 로마가 나온다. 그 로마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서바나가 나온다. 그렇게 가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고 고생도 덜할 수 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다시 로마로, 서바나로 가면 거리가 몇배로 늘어난다. 당시는 교통이 상당히 불편했다. 고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갈 상황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롬 15:26)

마게도냐, 아가야 지역 교인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연보를 모았고, 바울이 그것을 예루살렘에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28~30)

예루살렘 교회에 두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박해가 심했다. 예루살렘에는 주로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데,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성도들을 박해했다. 핍박이 심했기 때문에 성도들이 고난을 많이 당했다. 또 하나는 글라우디오 황제 때 큰 기근이 닥쳐서 가난한 성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소식이 멀리까지 전파가 되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교인들이 구제연보를 한 것이다. 바울이 그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방문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구제연보를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했다. 모든 연보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면 안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즐겨운 마음으로 연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사랑하신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성도들이 자원함으로 기뻐서 연보를 했다.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빚을 졌다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 교회에 복음을 전해주었다. 영적인 것, 신령한 은혜와 복을 나눠주었다. 그러므로 육적인 것, 물질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것은 빚을 갚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면 헌금을 모아서 전해주는 것인데 바울이 직접 이 일을 해야 되는가? 바울은 이것을 어떻게 보았냐면, 유대인 교인들은 이방인 교인들을 기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방인을 멸시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방인 교회가 기쁨으로 헌금하여 보내주니 유대인 교회가 잘 받아서 이방인 교회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갖게 되면 세계 교회가 하나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래서 바울이 직접 앞장 서서 가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성도들이 믿음으로 단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고 헌금 취급하는 것은 신중한 일이기 때문에 바울이 직접하는 면도 있다. 


28절

구제 연보를 가리켜 열매라고 했다. 헌금은 열매이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것에 대한 열매이고, 복음의 씨를 뿌리면 믿음이 자라나는데, 헌금으로 열매 맺어서 하나님께 감사로 보답하게 되는 것이다. 열매가 맺혀야 마무리가 잘 되는 것이다. 헌금은 신앙의 열매이고 은혜의 열매이다.

"서바나로 가리라" 예루살렘 갔다가, 로마를 경유하여 말씀을 전하고, 로마 교회가 바울을 파송해주면 서바나에 선교를 하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사도행전 21장 17절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붙들려서 천부장에게 심문을 받고 죄 없음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벨릭스 총독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려고 하는데, 바울을 죽이기로 결심한 결사대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을 로마 군대로 호위하여 총독에게로 보내게 된다. 총독에게 심문을 받았는데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후에 로마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행 28:16)

바울이 드디어 로마로 입성을 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한다. 본문에서는 서바나로 가리라고 했는데, 성경에는 바울이 서바나에 갔다는 기록이 없다. 후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참고하면,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당해서 서바나에 가지 못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서바나에 가서 전도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9절

바울이 로마로 갈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롬 1:11)

말씀 듣는 것이 복받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 적인 것, 물질만 복인줄 아는데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신령한 복이다. 


30-33절

바울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한다.

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긴점을 받게 하고

바울을 해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건짐을 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2)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이방인 교회가 구제 연보를 한 것을 예루살렘 교회가 좋은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이방인 교회에 대해서도 좋은 마음을 가지는 기회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3)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예루살렘 사역과 로마 교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잘 마치고 기쁨의 교제를 나누기를 소망하고 있다. 


15장 후반부의 중요한 내용은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다. 그리고 유대인 교회 성도들과 이방인 교회 성도들이 하나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선교하는 일에 교회들이 함께 동참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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